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에키 히토시 (문단 편집) == 생애 == 1926년 12월 25일 정토진종계 승려 우에키 테츠죠[* 그는 후일 [[환속]]하고 귀금속 공예가로 일했다.]의 장남으로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우에키가 태어난 날은 공교롭게도 [[다이쇼 덴노|다이쇼 천황]]이 죽은 날이라 [[다이쇼]]에서 [[쇼와]]로 넘어가는 순간에 세상 빛을 본 셈이다. 그래서 우에키는 다이쇼 15년 생인지 쇼와 원년 생인지가 다소 애매하다. 당시 종파의 수행으로 바쁘던 아버지 테츠죠 대신 [[삼촌|숙부]]가 나고야 시청에 [[출생신고]]를 하려 했으나 깜빡하는 바람에 우에키의 출생신고는 2개월 늦어지며 호적상 생일은 1927년(쇼와 2년) 2월 25일 이다. 그래서 젊을 때는 경륜 있게 보이려고 다이쇼 태생을 자처했고 중년기 이후에는 조금이라도 젊은 느낌을 주고자 쇼와 태생이라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미에현]]에서 보냈다. 승려인 아버지 테츠죠[*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신자들에게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설파하다가 수도 없이 감옥에 갇히면서 [[빨갱이]] 취급을 받은 [[진보]] 성향의 인물이었다.]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아 어릴 적 부터 불교 수행을 받았다. 청소년기에는 [[도쿄도|도쿄]]에 상경하여 진정사(眞淨寺)에서 수행을 계속하다가 전쟁이 끝났다. 전쟁이 끝난 후 [[토요대학]] 문학부 국한과(國漢科)를 졸업한 뒤 가수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고, 1955년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 멤버로 합류하여 코미디언과 배우를 겸업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우에키의 대표적인 코미디 컨셉은 '''무책임한 남자'''로 주로 여럿이 음식을 먹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유도한 다음 하나 남은 음식을 몰래 집어 먹는다던가 옆에서 같이 길을 걷는 사람을 가볍게 툭 치고 모르는 척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였다. 대표적인 [[유행어]]는 '''나 안불렀어? 안 부른거지... 이거 또 실례했습니다!(お呼びでない?...お呼びでない、ね。こりゃまた失礼いたしました!)'''[* 주로 엉뚱한 타이밍에 뜬금없이 튀어 나오거나 또는 어떤 일을 저질러 놓고 뒷감당이 안되면 무책임하게 내뱉고 도주하는 멘트였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띠용 하면서 쓰러진다~~ 참고로 이 유행어는 우에키의 [[매니저]]였던 [[마츠자키 마사오미]]의 실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상세 내용은 [[코마츠 마사오]] 항목에 수록.] 였고, 노래로는 '''스다라부시(スーダラ節)''', '''무책임일대남(無責任一代男)''', '''닥치고 나를 따르라(だまって俺について来い)''' 등을 대 히트 시키며 1960년대를 풍미하였다. [[파일:external/tomoki.tea-nifty.com/hitoshi_ueki.jpg]] 이외에도 이런 역동적인 포즈들의 몸개그로도 유명했다. ~~[[나카모토 코지|이 양반]]처럼 체육계 출신이 아닌가 의심된다.~~ 약 15년 동안 일세를 풍미하는 가수 겸 코미디언으로, 나머지 15년 간은 최고 인기 코미디 그룹의 자리를 [[더 드리프터즈]]에게 넘겨주고 중견 및 원로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다. 1985년[* 이 연도는 공교롭게도 [[도리후]]의 실질적 해체 시점인 [[8時だョ!全員集合|8시라구! 전원집합]] 종영과 같은 년도이며 요시모토 흥업 소속의 코미디언으로 대표되는 관서 지방의 만담풍 코미디가 유행을 끌기 시작한 즈음이다.] 이후로는 코미디 활동을 줄이고 음반도 리메이크 및 메들리 음반만 내는 등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 2007년 1월 식욕부진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으나 얼마 안가서 폐기종으로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결국 동년 3월 27일 폐기종 악화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80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